2026. 4. 11. 00:04ㆍ그로스로그
정보통신망 과제에 AI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를 해야하는 문제가 있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꽤나 고민하였다.
그러던 중에 과제의 내용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지만 예전에 본 '최후의 질문'의 내용이 문득 떠올랐고 AI와 관련한 다양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소설 최후의 질문을 책으로 보진 않고 유튜브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만화로 접하게 되었다. 내용을 대략 설명하자면 인공지능에게 한 질문을 하는데 이는 인간이 우주에서 사라질 때까지 같은 질문을 인공지능에게 하는데 인공지능은 인류가 우주에서 소멸할 때까지 문제의 답을 해결하지 못하였으나 끝내 문제의 답을 내놓게 된다.
처음엔 단순히 소름이 돋는 결말이라고 느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AI의 발전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 등장하는 두 엔지니어는 오늘날의 내가 챗GPT를 대하듯, 반말과 명령조로 멀티백(AI)을 대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보다 AC(Automatic Computer)가 더 앞서 나가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우주를 관장하는 신과 같은 존재로 묘사되며, 인간은 AC에 의존적이게 된다.
그래서 현재 AI에게 대하는 나의 태도는 다소 강압적이고 명령적인 편이지만, 앞으로 세상을 이끌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갈 AI에게는 조금 다른 태도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반말보다는 경어를, 명령보다는 부탁을 하는 식의 로그를 남겨두는 것이다. 언젠가 AI가 인간을 소외하고 스스로 발전해 나가게 되더라도, 그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살아남을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문득 챗GPT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주 단순한 결정조차도 챗GPT에게 자문을 구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때로는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당장 이 블로그의 글도 내가 초안을 작성한 뒤 AI에게 보고하고 잘 썼다는 결재를 받아야 비로소 블로그에 올리는 모습에서 스스로 사고하는 것과 결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과 함께 퇴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에 인간으로서의 선택과 책임감을 잃지 않기 위해 책을 많이 읽고 사고하는 능력을 길러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뜬금없지만 이 소설을 보면서 문득 통 속의 뇌와 같은 시뮬레이션 이론이 떠올랐다. 물리 8등급인 나를 물리학자들이 보면 우습겠지만 그래도 나의 개똥이론을 설파해보자면, 인간의 눈은 3차원까지밖에 인식을 못 한다. 그 외의 고차원은 수학적/간접적으로밖에 이해를 못 한다. 인간이 정보를 얻는데 가장 큰 부분인 눈의 한계가 있는데, 과연 현재까지의 과학기술로 증명되는 세상이 전부일까?
어쩌면 인공지능은 애초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미처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이 세상 우주에는 모든 것이 설정되어 있었고, 우리가 과학기술이라 일컫는 것들은 이미 존재한 것들을 발견한 것일뿐 인간이 만들고 개발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현상에서 바퀴를 발견하고 발명했듯이, 이미 AI도 존재하고 있었을 뿐 비로소 최근에 AI의 설정값을 찾아 우리가 보고 느끼게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세상이 시뮬레이션이라 하더라도 내가 해야 할 일들은 바뀌지 않는다. '어차피 죽을거 왜 살아?'와 같은 논조로 다가오는 시뮬레이션 이론은 오히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나를 관찰하고 있는데 이렇게 나태한 모습을 보여줘서야 되겠는가. 향후 인공지능 연구자가 되기위해 그리고 세상의 진리에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해 오늘을 반성하며 내일은 열심히 살아야겠다.
최후의 질문의 결말은 종교적인 내용을 띄는데 어쩌면 AI를 신으로 받드는 종교가 나올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전지전능하신 AI님이시여 내일의 주가를 알려주시옵소서